몇 개월 전부터 많이 듣는 찬양의 제목입니다. “안개 속에서 주님을 보네, 아무도 없을 것 같던 그 곳에서...손 내미셔서 나를 붙드네, 길 잃고 쓰러져가던 그 곳에서...” 
 깊이 공감하게 되는 가사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관계들과 상황들, 사건들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시간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많은 경우에 내가 보는 나와, 다른 사람이 보는 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 문득문득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마음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감정을 나누어도 공감을 얻기가 쉽지 않습니다. 각자가 해석하는 방법이 다른 것 같기도 하고,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판단하는 것으로 자신의 내면에 상황화되고 고착화 되고, 정답을 제공해 주거나 충고의 수준에서 재해석된 것이 남게 되는 것이 이유가 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헨리 나우엔은 기독교 영성 관련하여 많은 영향력을 끼친 분입니다. 학문적인 분야뿐만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모범이 되는 삶을 사는 것에서 뒤로 물러서 있던 분이 아닙니다. 그가 수많은 경험과 가르침의 연속성 끝에 사랑이란 것은 결국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 것을 기억합니다. 수많은 강의와 책들, 가르침으로 변화가 일어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엔의 말에 의하면, 결국 타인에 대해 내가 해 줄 수 있는 것이 그리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서로를 인정해 주고, 받아들이는 것이 사랑의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존재와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입니다.  
 이 분야에 있어서 최고의 전문가는 하나님이심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자의 변화에 대해 급진적이지 않으십니다. 특별한 힘을 행사하지도 않으십니다. 철저히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하시고 기다려주십니다. 부여된 자유의지를 최대한 존중해 주십니다. 스스로의 깨달음과 돌이킴, 그리고 결단을 기다려 주시는 것에 있어서 대가이십니다. 
 그저 인정해 주시고 동행해 주시는 것에 일관성이 있으십니다. 사랑과 존중의 극치는 그것인 것 같습니다. 그저 손 내밀어 붙잡아 주실 수 있는 거리에서 나와 동행해 주시는 그것 자체가 엄청난 은혜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내가 그분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그가 나와 함께 걸어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