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샌디에고 바닷가를 지나는 길이 있어 잠시 차를 멈추어 섰습니다. 모처럼 일상 가운데 쉼표를 찍는 시간이었습니다. 저 멀리 수평선 위에 푸르른 하늘이 펼쳐지고 구름들이 저마다 바람에 몸을 싣고 군무를 춥니다. 

 저는 바다를 좋아합니다. 제가 나고 자란 고향은 부산입니다. 부산에는 제법 유명한 바다가 있습니다. 잘 아시는 해운대를 비롯하여 제가 자란 대연동 근처에는 광안리가 있습니다. 해운대에 큰 신시가지가 형성되면서 시내로 가는 길에 차가 많이 막히게 되니, 해운대에서 광안리를 통과하여 시내와 연결되는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광안대교가 있습니다. 부산의 명물이 되었고, 불꽃놀이는 관심 받는 큰 축제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도 섬에 연결되는 큰 대교는 높이가 엄청납니다. 5대양을 누비는 미군 군함들이 드나들기 위해 높이를 높여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서 들었습니다. 각양각색의 군함들이 줄지어 서서 수리를 합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임무를 수행하며 수고한 군함도 정비를 하며 쉼표가 필요합니다. 

 제가 서 있는 곳에서 바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니, 어느덧 저의 고향과 연결됩니다. 고향에서 이 곳, 이 시간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시간들이 일순간 스쳐 지나가며 주마등처럼 마음속을 흘러갑니다. 소망으로 가득해 모험을 떠난 순간도 기억나고, 전혀 예상하지 못한 고난을 맞이한 순간들도 기억이 납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부족하지만 어떠하든지 믿음으로 살려고 애썼습니다. 믿음으로 맞이하고 선택한 순간들이기에 흐트러짐 없이 대면하려고 힘을 다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애씀과 힘씀도 내려놓아야 함을 깨닫고 고백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저의 믿음과 결단과 의지를 드림, 열심과 열정과 상관없이, 주님은 주님의 선한 일을 제 인생에 기록하고 있으십니다. ‘에벤에셀’의 하나님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내가 이룬 것은 진정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좋아하는 “은혜”라는 찬양의 가사처럼,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한정된 수량의 케리어에 최소한의 것을 넣어 두고, 어린 두 아들들과 아내와 함께 들고 LAX에 도착한 날이 엊그제 같습니다. 1년 안식년 기간 동안 선교학 공부를 하려고 입국한 그 순간이 변하여 이렇게 샌디에고에서 살게 되고, 목회를 하게 되리라 예상한 적도, 간구한 적도 없습니다. 샘물가족과의 만남은 하나님이 써 내려가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곳에 저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에 저를 맡깁니다. 지금 이곳의 시간들은, 하나님 앞에 서는 그 날, 생명의 면류관으로 하나님을 향한 송영과 함께 드려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