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회(所懷)>
 중학교 3학년 말에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인해 실명과 실어증에 어려움을 겪으셨습니다. 고등학교 입학식을 마치고 온 그 날 응급실에 가신 어머니를 대학병원에 찾아가 뵙고 많이 울었습니다. 
 그 때 친구 어머니는 자신이 허리 디스크로 힘드신 중에 수 개월 동안 간절히 기도하며 전도하셨습니다. 그 노력에 감동 받으신 어머니는 저에게 자신을 대신하여 교회에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몇 주 교회를 다니다가 낯선 가운데 생긴 교회 친구들이 거의 강제로 저를 이끌어 난생 처음 교회 수련회에 참석했습니다. 모든 것이 낯설었습니다. 찬양도 설교도.. 특별히 수 많은 기독교 용어들이 힘들었습니다. 
 마지막 날 폐회예배 때, 연세 높으신 담임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셨습니다. 다른 것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설교 제목이 저에게 공감이 되어 아직도 기억이 납니다. “사람의 종이 되지 말라!”. 마지막 기도시간 친구가 저의 손을 굳게 잡고, 눈물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당연히 저는 기도하기 보다는 통성 기도하는 주변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친구의 눈물 흘리며 기도하는 외침 소리에 혼돈스럽기도 하고 마음이 어려웠습니다. 무엇보다 저는 기도할 수 없었습니다. 
 단 한 가지 지금도 기억되는 것은 친구의 그 눈물이, 절규와 외침이 저를 사랑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를 위해 이렇게 울어 주다니…. 워낙 친한 친구라 깊은 우정이 이미 수 년동안 쌓여 있었지만 그 친구의 사랑에 감동되어 ‘나도 교회 열심히 다녀 보아야겠다.’ 라는 작은 결심을 하였습니다.  
 이후로 교회를 착실히 나가고 친구에게 기타를 배웠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찬양을 친구 집에 가서 함께 노래하였습니다. 찬양을 잘하는 친구는 나에게 멜로디를 가르쳐 주고, 제가 익숙하게 부르면, 아름다운 화음을 넣으며 찬양해 주었습니다. 아직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한 날들이었지만, 찬양을 부르면 나도 모르는 눈물이 흘러내리곤 하였습니다. 얼마전 새벽기도 시간에 그 시절 불렀던 찬양이 떠올랐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오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광명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심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며, 
주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영생을 얻기 때문이니,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나서도 이 찬양을 많이 불렀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그러하듯이 찬양의 가사대로 살고 싶었습니다. 켜켜이 쌓인 하나님을 향한 작은 결단과 결심은 안개 속에서 멀리 비추이는 등대의 빛처럼 저를 하나님께서 이끄심의 결과입니다.
 어릴 적 마음 그대로 하나님 앞에 머물고 싶고, 조심스럽게 하나님을 알아가고 싶습니다. 쌓이고 쌓인 하나님과의 생명과 사랑의 관계를 통해 살아난 저의 호흡에 저의 심장과 손과 발을 드리며 살고 싶을 뿐 입니다. 
 막상 사역자로서 사역을 이어가는 중에, 저 자신의 갈망과 의도와 헌신과는 반대로, 분열이나 갈등, 미움이나 오류가 성난 파도처럼 일어나는 것을 경험하곤 합니다. 해법이 있을까요? 특별한 해법은 없는 듯 합니다. 
 그저 그리스도의 법을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조용히 소명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죄인인 나를 용서해 주신 십자가 앞에서 나의 한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실천하는 법 이외에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그 사랑에 의지하고 그 사랑에 모든 것을 위탁하는 외에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흠이 많고 한계 투성이인 우리가 구원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구원은 완성형의 인간으로 우리를 단번에 성화에 이르게 해 주지는 않습니다. 나를 통해 일어나기를 고대하는 수 많은 복음의 아름다운 열매가 무성하게 맺히기보다, 여전히 광야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저 심령이 가난한 자로, 애통하는 자로, 온유한 자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긍휼히 여기는 자로, 마음이 청결한 자로, 화평케 하는 자로,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의 자리에 서는 법을 오늘도 연습하게 됩니다. 
 영원에 속하신 하나님의 찾아오심에 잇대어 믿음의 길을 꾸준히 걸어내길 소망할 뿐입니다. 그 시간을 내가 다 알 수 없으나, 그분의 통치하심에 나를 맡겨 드립니다. 수많은 하나님의 때 들이라는 시간의 조각조각들을 통해, 결국에는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알기에, ‘지금’, ‘이 시간’, ‘이 곳’에서 하나님의 샬롬과 라파 되심에 나를 던져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