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9장6~14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는 죄
롯이 소돔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요? 롯은 죄가 관영한 그 땅에서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아는 자로 살았기에 고통속에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벧후2:7,8). 신자가 세상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기에 고통일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살아낸다는 것은 고난을 위해 부름받았다는 말입니다. 성도의 정체성은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자임과 동시에 이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에 고통을 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아무런 갈등, 고민없이 살고 있다면 ‘내가 과연 하나님이 뜻과 그의 기뻐하시는 바대로 살고 있는가?’ 심각하게 물으셔야 합니다. 또 하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문제는 이런 영적전쟁을 인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전쟁을 어떻게 실행하는가 입니다. 롯이 소돔과 다른 삶을 살려고 했지만, 그 삶을 풀어내는 방식을 보면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몰려와 ‘그사람들을 내어 놓으라’고 하자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기 딸들을 내어놓습니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겉모습은 세상과 다른 삶을 살려는 것처럼 보여질 수 있지만, 그 내면을 보거나 문제를 해결해가는 방식을 보면, 세상의 방법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것이 위장된 거짓 겸손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옳음을 과시하기 위해 종교적인 행동으로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취합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주님한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하지만 신앙좋음의 기준은 세상입니다. 기독교신앙을 이땅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훌륭한 업적을 이루고 모두가 칭송할만한 자리에 앉았다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업적이 잘못되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과정이 예수의 방법으로 행하고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이 세상의 방법을 따르고 그래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오는 갈등도 없는 삶을 살면 그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좋다는 것은 육체가 아닌 성령을 따르고 있는지로 판단하셔야 합니다. 성도의 힘은 오직 그리스도여야 합니다. 다른말로 예수의 성품을 소유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도의 자랑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지 않으면 그 자리에는 반드시 인간의 의가 자리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기 중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성경은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교만함을 보이고, 성경을 토정비결처럼 대하게 됩니다.
또 한가지, 천사들이 폭력을 행사하던 소돔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방황하게 만듭니다. 지금 심판의 작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 모습을 보고 롯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받아들이는 악을 보여줍니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과 말씀을 우습게 여기는 태도입니다. 그렇다면 빛속에 들어온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그 빛을 농담으로 여기지는 않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을 가볍게 대하지는 않습니까? 말씀을 통해 죄를 지적받으면 오히려 감사합시다. 빛의 자녀인데 어둠의 사람들보다 어리석게 행동하지 맙시다.
신자는 그들과는 다른 새로운 피조물임을 기억하여 빛의 자녀답게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