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9장1~5 소돔의 죄

인류역사의 마지막 심판을 예고편 처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소돔 고모라의 이야기입니다(눅17:26~). 우선 소돔고모라 이야기하면 가장 먼저 동성애의 문제를 떠올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들의 죄악상을 조금 다르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16장 말씀을 보면, 소돔이 심판받는 이유가 성적 타락보다는 교만하고 음식물이 풍족했고 태평했다는 것으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교만하다고 지적하신 것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이고 하나님을 경외함이 없기에 인간은 교만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음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자신의 노력으로 이룬 것으로 여긴 것입니다. 노아 홍수심판때도 많은 사람들은 그 심판이 자기들과는 무관하다 여겼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과 동행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아도 살아가는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우리에게 닥친 여러 문제들은 이리저리 분석도 하고, 자신을 자책하기도 하고, 그 문제로 밤을 세우는 일은 있어도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서는 무덤덤하고 안타까워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의 모습을 ‘하나님의 말씀을 일부러 잊으려 한다’고 지적합니다(벧후3:5).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우리가 좋아하고 관심있어 하는 일을 잊어버리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소돔 고모라의 죄는 죄를 지은것도 문제이지만, 더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 돌이키는 회개가 없다는 것입니다(렘23:14). 소돔의 죄악은 정말 무섭습니다. 이런 성적타락은 폭력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우리가 그들과 상관하겠다’는 말은 서로의 합의에 의한 일이 아니기에 폭력입니다. 소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기준이 되지 못했기에 자신들의 삶의 방식을 고수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근거되지 않아도 전통이라는 명목하에 얼마든지 물리적인 힘까지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을 이끌지 못하기에 죄를 죄로 여기지 않을 뿐만아니라 회개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가지지 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속의 피를 흘리신 목적은 우리가 다시는 죄의 종노릇하지 못하게 하려고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를 입은자가 어떻게 죄 가운데로 걸어갈 수 있을까요? 이 죄의 문제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 도움을 날마다 간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룰 수 없기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죄악이 가득한 이 세상속에서 신자에게 필요한 것은 내가 누구이며, 그런 죄인을 구원하신 하나님은 누구신지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 복음의 진리가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소돔 고모라보다 더 악한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이지만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함께 하는 인생입니다. 이런 복된  인생임을  알고  죄악의  자리에서  돌이키는  은혜를  날마다 간구합시다. 우리의 한 걸음이라도 아버지의 뜻에 합당하고, 아버지가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몸부림치며 그렇게 살아서 은혜와 긍휼과 사랑에 풍성하신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