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8장16~21 하늘총회에 참여케 하시는 은혜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은혜와 심판사이에 놓여져 있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하나님께서 두 천사와 함께 대화를 하는 장면이 소개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의 회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두 천사와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은 아브라함이 듣기를 원하고 있고 아브라함를 그 회의에 참석시키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이 이 하늘총회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18 절에서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만민이 그로 인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천하만민속에는 소돔과 고모라도 포함이 되기에 아브라함이 총회에 들어와야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아브라함은 중재자의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소돔과 고모라는 결국 망합니다. 이유는 아브라함은 중재자이지만 온전한 중보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노아, 다니엘, 욥, 아브라함, 롯 그들이 아무리 의인이라 할찌라도 자기 생명을 구하는 것에서 그칠 뿐(겔14:14), 온전한 중보자가 아니며 메시아가 아닙니다. 이 중재의 원형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영적인 소돔과 고모라인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었으며, 정죄받는 자가 아닌 의롭다 여기심을 받게 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자의 현실은 너무나 다릅니다. 그럴찌라도 우리가 화평케하는 자가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 모든 아픔과 질고를 지시고 죽으셨기 때문에 나음을 입은 자라는 자기 정체성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만이 우리가 겪는 모든 환난과 고통을 아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건져내십니다(요16:33). 주님은 우리에게 환난을 없애주시는 것이 아니라, 그 환난을 이길 힘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당하시는 환난은 우리가 성장하라고 주시는 기회로 여겨야 합니다. 
한센씨병은 고통을 모르는 병입니다. 고통을 모르면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다시말해 고통은 생명과 맞 닿아 있습니다. 우리가 고통을 당하고 있다면 주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고통을 통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또 하나, 아브라함이 하늘총회에 들어와야 하는 이유를 19절에서 “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다”고 말합니다. 여기 ‘택했다’는 단어는 매우 친밀하고 구체적으로 안다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기에 안다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랑하기에 안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게 택하시고는 자녀가 하나님의 도를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이 율법을 통해 인간은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자임을 깨닫게 하셔서 우리를 율법을 온전히 성취하신 에수님에게로 향하게 하십니다(롬3:19~, 갈3:23~). 

소돔의 구원을 위해서는 메시아가 오셔야 하고, 우선은 아브라함이 필요하고, 그의 아들 이삭이 오고, 그 후손으로 메시아가 오셔야 소돔의 문제는 해결됩니다. 왜 우리가 이땅이 아닌 하늘에 매인자로 살아가야 할까요? 어쩌면 우리가 죽은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망권세를 이기신 예수님때문에 정죄함을 받는자가 아닌 자유자로서 하늘총회에 속한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유업을 이을 자가 되었으니 주안에서 견실하여 흔들리지 말고 담대하게 살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