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엡2;4~7 위대한 사랑

인간의 자기존재에 대한 무지는 전적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한무지에 기인합니다. 그래서 신앙이 깊어진다는 말도 인간이 자신의존재를 제대로 깊이 알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어떻게, 어디에서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성도라면 성경이 인간에 대해 가르치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기본적인 태도이지만 성도는 기본적인 태도를 넘어선 절대적 의존의 태도가 필요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하나의 견해로 치부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인간에 대해 알아갈때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특별히 예수님의 성육신 사건이 인간의 존재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엡2:1~3은 범죄한 인간의 비참함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불행한 상태를 ‘허물과 죄로 죽었던 인생’이라 표현합니다. 그러나 4~7절은 그 죄인의 변화된 상태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초점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인간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서만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바울사도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성품을 풍성한 긍휼과 위대한 사랑이라고 묘사합니다. 그 긍휼과 사랑때문에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세 개의 합성 단어를 만들어서 표현합니다. ‘함께 살리다, 함께 일으키다. 함께 앉게 하다’입니다.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됨으로써 누리게 되는 결과들입니다. 다시말해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영광과 정체성과 모든 것을 공유하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 변화는 일차적으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주신 객관적 사실이지만 동시에 신자들의 삶속에서 주관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위대한 사랑을 실천함에 있어서 부족함이 있습니다. 다른말로 내가 누구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인생이 그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주께서 성육신으로 이미 모범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육신 하신 목적은 돌을 떡으로 만들기 위함도 아니고, 성전에서 뛰어내리면 받아주는 초월을 위해서도 아니고, 세상 질서에 항복하며 대충 타협하며 살기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이런 유혹속에 살 수 밖에 없는 인생현실속으로 찾아 오셨으며 함께 아파하시며 함께 우시며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인생의 비참한 현실과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분노와 원망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홀로 두시지 않는다는 것이 성육신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가치관으로 세상것으로 만족하려는 그곳에서 벗어나라고 웅변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자와의 관계를 어떤 법으로, 도덕으로, 능력으로 기준삼지 않습니다. 자녀로 대하십니다. 당신의 위대한 사랑과 풍성한 긍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주안에서 더 자라가야 하고 더 무르익어 가야 합니다. 그 자리가 바로 십자가로 이루신 영광의 자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