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8장 하나님과 함께 식사를
18장1절에 ‘그리고’라는 접속사로 연결되는 것을 볼 때, 17장의 할례와 연장선상에서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19장의 소돔 고모라 이야기는 할례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사건으로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집을 찾아오신 이야기입니다. 갑자기 3명이 출연합니다. 지금 아브라함은 이 세분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확신은 없지만, 그들이 하나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중요한 말이 3절의 ‘내 주여’인데, 여기 ‘내 주여’는 단수로 세명에게 한 것이 아니라 한명에게 한 말입니다. 19:2에서 ‘내 주여’를 의도적으로 복수로 사용되는데 18장에서는 의도적으로 단수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내가 당신께 은혜를 입었다면 내 집에 거하세요’라고 했더니 ‘너의 말대로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이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이분이 은혜를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이해하게 되었고 이후 그의 행동이 분주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하나님이 자기집에 방문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감격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그러나 아브라함의 집에 오셨던 하나님은 떠나가셨습니다. 그러나 에수를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겠다” 저와 여러분의 인생은 예수님의 싸인이 적혀 있는 인생임을 기억합시다. 없애버리고 지워버렸으면 하는
그 쓰레기 같은 인생속에도 주님은 함께 하십니다 잘 안되고, 실수하고 내 욕심대로 결정하고 행동했던 그 모든 곳에서도 주님은 말씀대로 함께 하십니다. 유명인이 물건을 가지고 있으면 몇배의 값어치가 있듯이 눈물로 점철된 인생도 주님께서 만지시면 보석이 됩니다. 이 못난 자의 인생속에 예수님이 거하시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얼마나 존귀한 인생인지 알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함께 식사를 하신 유일한 사건입니다. 이 엄청난 일로 인해 아브라함은 ‘모셔 서서’시중을 들고 있습니다(8). 하나님의 식사에 시중드는 것만으로도 영광일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친구로 대해주시는데 하나님께서 계시록에서 이렇게 우리를 대해 주십니다.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하나님은 우리가 뭔가 잘하고 이룬 업적이 있어서 기뻐하시는 것이 아니라 자녀이기에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그 자녀와 함께 식사하기를 그렇게 원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서서 대접한 것만으로도 기뻐했다면 우리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쁨속에 있는 자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속하신 예수안에 더불어 살아가는 인생입니다. 송아지를 잡은 것이 아니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해 자기자신을 주셨고 아무리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하늘의 만나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종처럼 옆에 서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로서 하나님을 영원히 즐거워하는 교회로 세워져 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