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7장 9~14 참 할례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자손을 번성하게 하고 가나안 땅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적으로 자손을 많이 낳고 땅을 많이 사 모아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약속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라’는 말씀과 함께 ‘할례를 받으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 그 증표로 할례를 행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례는 ‘잘라버리다. 끊어 버리다’는 뜻으로 죽음을 의미합니다. 다른 말로 죄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죽어 마땅한 우리인데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몸에 일부를 잘라냄으로써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말해주는 것이 할례의 의미입니다. 할례를 신약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포피를 잘라내는 것이 그리스도에게로 연결됩니다. 그래서 포피를 잘라냄이 충분한 증표가 되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다는 말씀이고 이것이 십자가의 대속사건입니다.

마땅히 끊어져야 할 우리(사53:8)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끊어지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았기에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한 것입니다. 여기 죽음은 하나님의 그 어떤 선하심이 없는 완전한 결별의 상태인 지옥을 말합니다. 거기에서 그리스도의 할례때문에 우리를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례를 통해 육체적인 노력이나 방법으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에게는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에수님만을 자랑할 수 밖에 없는 인생임을 평생을 통해 배워가야 합니다.
그래서 ‘난지 팔일만에 할례를 받으라’는 말이 우리를 놀라게 합니다. 8 일은 안식후 첫날 즉 부활의 날입니다. 부활은 새창조를 말합니다. 할례를 난지 8일만에 행함으로써 우리가 죽는 것이 아니라 새피조물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를 통해 가지는 우리의 정체성은 새창조된 인생이 됩니다. 죄를 끊어내는 십자가, 죄에 대하여 죽은 십자가를 경험한 우리는 죽음을 이기신 주안에서 함께 새창조된 자녀가 되었기에 우리는 진정한 참 할례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하루는 성령안에서의 하루이고, 성령과의 동행이어야 합니다. 여전히 죄속에 허우적 거리고, 힘이 드는 하루를 살아가면서도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창조된 삶을 산다는 것 때문에 견디게 됩니다. 약속하신 주님은 어제도 함께 하셨고, 오늘도 건져 내시고, 내일도 감찰하십니다. 아니, 영원부터 영원까지 간섭하셔서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만드시는 선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의 인생을 향한 의지가 얼마나 진지한지 깨달으신다면 우리의 고집을 그만 부리고 선하신 아버지를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그 사랑안에 우리가 존재함을 기억하고 매일이복되고 감사와 찬양이 넘치는 신자가의 인생이길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