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렘32:38~41 My pleasure
개신교회에서 종교개혁주일을 뜻깊게 생각하는 이유는 개신교회가 거기서 시작되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참 교회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거대한 부흥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 부흥은 복음의 영광이 가리워져서 볼 수 없던 시대에 말씀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신 부흥입니다.
한마디로 종교개혁은 조직을 동원한 사회개혁운동이 아니라 ‘말씀으로 돌아가자’(Reform)는 것입니다.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가치들을 세상의 원리나 시대의 흐름을 읽음으로 개혁해 가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말씀으로 점검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세운 전통에 의해서, 전문가의 판단에 의해서, 여론 조사에 의해서, 시장의 필요에 의해서 움직여 지고 있고, 인복주의적 사고와 판단에 의해서 말씀은 희석되고 오해되고 왜곡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현상이 말씀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남유다가 바벨론에 멸망하기 1년전 쯤 미가 선지자는 폐역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했지만 사람들은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히스기야 왕과 백성들은 미가 선지자의 말씀을 듣고 유월절을 다시 지키고 성전을 보수하는 개혁을 일으켰습니다(렘26:19). 히스기야의 개혁의 배후에는 미가 선지자의 말씀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당시 부패하고 타락한 시대를 향해 바른 개혁은 여호와 하나님의 영으로 시작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미가3:8).
진리의 영, 말씀이 우리에게 임할때만이 우리가 어디로부터 부름을 받았는지, 왜 그 길로 가야만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다시금 삼위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존재하셨던 방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어떤 갈등, 부족함, 대립이 없는 완벽한 하모니, 완벽한 기쁨, 완벽한 친밀감속에 거하셨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광이 되는 모습으로 존재하십니다(잠언8:30).
그런 완벽한 기쁨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인간에게 나누어 주시길 기뻐하셨습니다. 그 기쁨을 인간에게 주시려는 모습이 창세기 1,2장의 내용입니다. 칼빈은 이것을 하나님의 부성애라고 표현합니다. 삼위하나님의 기쁨을 나누어주고 싶어서 그곳을 에덴이라 지었던 것입니다. 이 기쁨을 신앙적 용어로 말하면 ‘은혜 받았다’입니다.
은혜는 나의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은혜를 생각하기전에 그 은혜가 어디에서 출발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은혜의 출발이 삼위하나님의 기쁨이라는 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일평생 예배하는자로 서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 수록 그 하나님을 기뻐할 수 밖에 없고, 그분을 즐거워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안에서 최고로 만족을 누릴 때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최고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실수하고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행동을 벗어나지 못하는 자인데 당신의 영원한 언약을 이루어 내십니다(렘32). 그리고는 그 언약을 실행하실 때 기쁨으로 하십니다(렘32:41). 우리 안에 하나님을 예배하고픈 열망이 생길때까지 하나님은 당신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실 것입니다. 당신의 선하심이 우리인생에 흘러 넘치게 하시고도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나의 기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