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엡1:17~23 영원이라는 안목
구원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나온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야할 곳이 있다는 측면에서 본문 18절은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과 구원받은 자가 누릴 영광의 기업을 말하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구원을 상징하는 출애굽사건도 애굽을 나온것이 전부가 아니라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굽을 나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우리의 구원은 죄와 사망에서 꺼냄 받았을 뿐만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기 위해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울이 에베소교회가 알기를 원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우리가 어떤 결과로 부름을 받고 있는지를 알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향하여 가고 있는지를 놓치게 되면 기독교신앙을 자기공로로 가져가는 무서운 결과를 낳게 됩니다.
구원받은 성도를 곧바로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으시고 이땅에서 인생시간을 지나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답게, 자녀다움으로 무르익어 가도록 인생이라는 시간이 주어진 것입니다. 즉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길 기뻐하십니다.
만약 장차 누리게 될 하나님나라의 기업에 대해 무지하면 애굽에서 나와서는 가나안에 들어가지 않고 홍해앞에 횟집차리고 거기서 먹고 마시며 즐기게 됩니다. 거기에 덧붙혀서 전도, 헌신, 예배생활, 기도, 진심같은 것으로 하나님께 새로운 복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헌신, 열심이 잘못된 것이 아님에도 은혜의 구원이라는 본질을 놓치게 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고 그 모든 열심을 자기공로, 자기의로 여기게 됩니다. 이 모두가 어디로부터의 구원인지, 동시에 어디로 향하여 가고 있는지, 어떤 결과로 부름을 받고 있는지를 놓쳤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시간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성도는 하나님나라에 모든 것의 기준을 삼을 때 개인주의와 자기 중심적 욕심을 초월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예수님을 붙들지 않으면 꾸며낸 겸손과 천사숭배, 남을 정죄하며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골2:16~).
예수님 때문에 우리의 신분은 이미 의인으로 확증되었지만 우리의 수준이 아직 확증되지 못하였기에 인생시간을 통해 성화되어가야 합니다. 이 성화는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처럼, 그의 살아나심으로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를 당신과 묶으셨기에 그 안에서 성화의 과정을 걸어가 완성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가 누리게 될 기업의 풍성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료되고 결정된 우리의 운명을 알고 기업에 풍성함을 누릴 자답게 영원이라는 안목을 가지고 현실을 충실하게 살고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