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5:7~17 홀로 죽음 사이로

씨, 자손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오늘 본문에서는 ‘땅’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씨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듯이 땅은 단순히 먹고 살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통치자, 백성, 땅이 나오는 아브람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려는 것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나라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다스림이 있는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단지 신이 나를 도와주어서 내가 이땅에서 잘먹고 잘사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이나 큰 차이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땅의 이야기는 사백년이 지나고서야 가나안 땅이 그들의 기업이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4대가 지난후에 가나안을 차지하기 위해 출애굽사건이 있습니다. 

출애굽은 구원을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출애굽사건을 통과해야 가나안이 이스라엘의 유업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고 또한 구원받은 자의 기업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씨를 언급했고 예수를 통한 구원과 구원받은 자가 누릴 영광의 기업을 누리게 될것을 땅으로 언급하신 것입니다. 지금 아브람은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어떻게 소유로 삼게 될 것인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묻고 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정결한 제물을 가지고 계약을 체결하는 의식을 가집니다. 이 계약체결에는 제물이 쪼개지게 되고 피가 낭자한 상황이 됩니다. 지금 언약을 이야기하는 자리에 죽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 언약은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는 새창조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여기 ‘깊은 잠, 흑암, 두려움’ 같은 단어들이 의도적으로 쓰이고 있고 이것은 모두 창조의 언어들입니다. 바로 이 죽음과 두려움에서 건져내는 것이 바로 새창조, 즉 구원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때 온 땅에 흑암이 가득했듯이 이 언약을 체결하시는 모습은 흑암에 있던 우리를 창조하시는 구원의 이야기 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연기와 햇불이 흑암중에 비치게 되고, 그 햇불이 쪼개진 제물사이로 지나갑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홀로 지나가십니다.

즉 이 약속은 하나님이 홀로 시작하시고 완성하신다는 하나님의 의지를 보여줍니다. 약속이 깨어지면 쪼개진 제물처럼 그렇게 하나님은 죽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넘어지고 온전히 율법을 행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지키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자신이 쪼개진 제물이 되시고 당신의 목적하신바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여러분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혹 우리는 그 하나님을 향해 돌을 드는 자는 아닙니까?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의 대속의 사랑을 아는 성도라면 그 주님께 항복하고 회개하는 삶 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나라의 백성답게 주님과 날마다 동행하는 자녀로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요? 참된 자유를 허락하신 예수께로만 나아가는 교회이길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