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4:17~24 나의 나 된 것은 주의 은혜라.
하나님의 설득하심으로 14장의 아브라함은 확실히 이전과는 달리 믿음의 진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살렘왕 멜기세덱을 만나게 되고 그는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고 아브람은 그것에 감사해서 십일조를 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 사건은 그저 신앙의 아름다운 모습을 말하기 보다는 믿음의 진보가 분명 있지만 여전히 자기중심적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브람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람은 전쟁에 승리하고 어마어마한 전리품과 사람들을 데리고 평지길이 아닌, 험악한 산악지역으로 내려옵니다. 그쪽은 바로 자기의 집이 있는 헤브론이었습니다. 이것은 전쟁승리에 도취해 그 모든 전리품은 자기것으로 생각해서 헤브론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그때 멜기세덱을 만나서 아브람의 정신이 번쩍들게하는 말을 듣게 됩니다.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소서” 이는 모든 부와 명성을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아브람에게 복을 주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진정한 복이 무엇이며 그 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신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나의 실력으로 어떤 업적이 아니라, 우리 존재자체에 관심이 있습니다. 종종 ‘당신이 해야할 일이 있어서 죽지 않는다’는 말을 할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일을 다하지 못하면 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일의 성취를 위해 우리를 동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복이 되는 우리를 위해 일을 동원하십니다.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나음을 입었다면 그 기적을 통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내가 누구인지, 나는 하나님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자이구나’를 깨닫는 것으로 그 일들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바로 나 자신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린것입니다. 십일조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은 내 실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입니다(고후3:5). 그것을 멜기세덱을 통해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원전 2000년전의 사람인데 그는 기원전 천년 다윗때에 다시 등장합니다. 시편110편의 다윗의 시를 통해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또 천년이 지나서 예수님은 이땅에 오셔서 그 예언을 성취하십니다(히7:1). 그래서 창14장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은 그리스도를 대표하고 아브람은 신자를 대표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떡과 포도주로 먹이시는 것은 주님이 신자를 먹이시면서 복을 선언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누구이시면 어떻게 인생을 인도하시는지 경험했던 아브람은 실 한오라기도 가지지 않겠다고 손을 들어 맹세하게 됩니다(22). 그 이유는 그 업적이 그 돈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자랑할 것은 내 실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인생의 어리석음 마저 허락하셔서 결국 하나님의 설득으로 항복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