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창12장10~20 하나님의 고집

오늘날의 교회들이 예수믿고 천국가는 구원론과 내세론에 치중하다가 신자가 현실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는 간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매우 경쟁적이고, 인과론적인 세상에서 신자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몰라 나름의 경험과 축적된 지혜, 잔꾀를 동원하고, 착하게 살면된다는 도덕적 신앙관으로 덮어버립니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 고난과 한숨이 있는 현실속에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을 하시고, 어떻게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지 하나님의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큰 방향을 알아도 분명한 길이 없으면 우리의 방식대로 걸어갈 가능성이 크기에 성경은 우리가 가야할 방향과 목적을 붙잡고 그 과정과 내용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채워가길 원하십니다. 이유는 주님이 곧 길이고 진리이며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간 아브라함은 기근을 만나 애굽을 내려가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위험에 처해질 것 같아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는 잔꾀를 동원하게 됩니다. 그런데 거짓말한 아브라함이 아니라, 아내를 데려간 바로가 벌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고진감내로 이해해서 ‘고생했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다’로 가면 안됩니다. 18 절에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라고 바로가 아브라함에게 했던 이말은 하나님이 하와에게 했던 말입니다(창3:13). 다시말해 하와의 죄를 드러내셨듯이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죄를 드러낸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거짓말이 그토록 심각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목적은 사래를 통해 즉 여인의 후손을 통해 모든 이를 구원을 메시아가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인을 지금 바로가 데리고 있었기에 하나님은 재앙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사래를 통한 구원의 역사로 이 사건을 이해해야 합니다.

구원역사의 관점으로 볼 때 기근은 자녀된 우리를 자녀다움으로 만들어 가는 역할도 하지만 동시에 가나안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고향을 떠나 본향을 가는 것이 신자의 인생길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여전히 힘들고, 아프고 속상합니다. 이런 어려움을 통해 이땅이 끝이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본향이 있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땅의 삶이 너무나도 좋으면 절대 본향을 생각하지 않는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기근을 통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게 되기에 기근은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히11:13~16). 또한 기근을 만났을 때 자기의 힘으로 해결하고 자기의 유익을 챙기려는 아브라함의 길을 가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내 인생의 중심에 두는 것이 아니라 들러리 정도로 대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해 내가 누릴 유익을 계산하는 꼴입니다. 

주님을 내 인생의 중심에 두지 않는 기독교신앙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녀를 향해 가지신 목적 성취를 위해서 인간의 실패와 타협에도 불구하고 그 실패와 고난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이루어 내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우리를 붙잡고 있기에 우리가 살아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