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만이 불신앙이라면 겸손은 믿음이다
“교만은 제일 먼저 입고 제일 나중에 벗게되는 영혼의 옷이다” - George Swinok(청교도)
“나는 내가 교만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사실은 그 교만의 반도 모르고 있다” - Robert Murray M’Cheyne(19세기 스코트랜드 목회자)
“사람들이 종종 나를 높일 때 나는 기분이 좋다. 하지만 그렇게 느끼는 그 기쁨을 나는 혐오한다” - Henry Martyn (19세기 영국에서 파송된 인도선교사, 31세에 주님께로 감)
“나는 복음의 완전한 영광을 보려고 빛을 구하며 개인적인 금식을 했다. 그리고 또한 내 마음에 남아있는 모든 교만을 정복하기 위해서 금식을 했다” - Thomas shepard(청교도)
“겟세마네와 갈보리 보다 더 겸손이 잘 만들어질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 - Wayne A. Mark
“교만이 마귀는 우리와 함께 태어나 우리가 죽기 한 시간 전까지도 죽지 않을 것이다. 그놈은 우리의 본성 속에 너무나 깊게 엮여져 있어서 우리 몸이 수의에 싸이게 될 때까지 우리는 그놈의 최후에 대한 소식을 결코 듣지 못할 것이다” - Charles Spurgeon(19세기 영국 최고의 설교가)
겸손에 대한 여러 사람들의 인용을 보면 겸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교묘하게 충만한 교만을 설명하는 것이 더 나은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교만의 반대말이 겸손이라면 겸손은 믿음으로부터 나올 수 있는 태도입니다. 교만은 내가 나를 높여야 하고 나를 드러내야 한다는 조바심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조바심을 내어쫓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하실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이 우리의 인생을 붙잡고 계시며 인도하신다는 사실로부터 깊은 안위와 평강을 얻게 됩니다. 세상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마음이 상할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주요 심판자되신 주께서 우리의 아버지이라는 사실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유일한 자신감이어야 합니다.
설교자로서의 저의 교만함을 돌아봅니다. 늘 부족함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교를 할만하다고 생각했던 잘못을 회개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을 천박하게 선포하지 않도록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 동시에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 특별히 자기 백성을 실망시키지 않으시고 은혜를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고백합니다. 저를 포함한 온 교회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배워가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기에 영광의 보좌를 떠나 비천한 자리에 인간으로 오신 주님, 십자가에 수치와 아버지와의 단절을 경험하셨던 그 겸손이 우리의 전생애를 사로잡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누구와의 비교가 아니라 짐으로써 승리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매력적인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