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일 설교요약] 마20장 나중 된 자의 은혜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이 나중 온 자부터 품삯을 나누어 줌으로 먼저 온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쁠 행동을 합니다. 나중에 온 자에게도 똑같이 한 데라리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먼저 온 자는 자신이 일한만큼의 댓가를 요구하는데 주인은 자신의 정당함을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 약속한대로 한 것이다”(13절) 주인은 노동의 댓가가 아닌 약속으로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우리의 구원을 말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데 인간의 노력이나 실력에 근거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기뻐하신 뜻에 따라 선물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먼저 온 자와 같이 자신이 일한 것에 댓가를 요구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마19:27에서 자신이 다 버리고 주님을 따랐으니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냐?고 묻습니다. 내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다 안다고 말하고는 나의 공로로 내가 무엇을 얻을 수 있냐고 묻는 셈입니다. 이에 주님은 “먼저 온 자가 나중되고 나중 온 자가 먼저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먼저 오고 나중 오는 것에 근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내가 한 일을 자기 공로로 여기고 하나님께 무슨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면 그는 분명 나중 된 자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은혜로 이해하지 못하면 모든곳에 자기 공로가 들어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는 다 놓치고 신앙의 성장도 없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 영생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주권적인 역사요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나는 아무것도 아니며 죄 밖에 지을 것이 없는 자라는 인식은 모든 것의 주권자이신 주님만을 의지하게 만듭니다.

그러니 나중 온 자에게도 한 데나리온이 주어진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떤 조건없이 은혜를 받았다면 은혜로 살아감은 당연한 일입니다. 심지 않은 곳에서 거두게 된 자이고, 한 일이 없는데 칭찬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못난 자가 하나님나라의 유업을 받을 가치가 있는 존재입니까? 그럴 수 없는 자인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나중 된 자에게도 구원을 선물로 주시는 사랑은 죄인이 감당하기 버거운 사랑입니다. 그런데 그 사랑은 창조이래로 단한번도 떠난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여전히 그 사랑이 풍성한 자리입니다. 만만치 않은 세상에 살면서 내가 무언가를 받을 수 있을까를 생각하지 말고, 나중된 자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를 아는 자로 살아갑시다. 

그 은혜는 우리 죄의 무시무시한 진노의 눈빛과 얼굴빛을 우리 주님이 감당하심으로 주어진 은혜임을 기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아가는 복된 인생이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