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을 구원하실때 가지셨던 마음은 마지못해 하는 행동이
아니라, 그의 기쁘신뜻대로 행하신 창조의 계획이셨습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를 개척하면서 교회이름에 기쁨을 넣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 였습니다. 이는 소유의 증가나 주가나
집값의 상승으로 인한 천박한 기쁨이 아니라, 천지창조의 목적을 그의 기쁘신 뜻에 따라 실행하신 삼위하나님께서
가지셨던 그 희락이며, 은혜로 그 희락을 누리게 된 택자들에게서 회개와 더불어 일어나는 하늘에 속한
기쁨입니다.
그런데 이런 천상의 기쁨을 교회에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기쁨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변함없다면 기쁨을 상실한 것은 분명 우리들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 이유를 교회가 회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회개없는 기독교의 모습은 관념적인 신앙으로 드러납니다. 관념적 신앙은
한마디로 두마음을 가진 신앙입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것이죠!
우리는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이런 신앙이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교회는
다니고 있으니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라고 착각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와 바알을 섬기면서
자기들이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어디에도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도 괜찮다고 말씀하신적이 없으셨으며 오히려 매우 단호하게 금하셨습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혼합은 복음이 아닙니다. 반쪽진리는 진리가 아닙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없는 기독교입니다.
회개없는 기독교가 양상해 낸 관념적 신앙의 무서움은 결코 어려움과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신앙의 길을 가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죄없으신 주님께서 죄가 되셔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던
그 열정은 관념적 신앙인에게서는 도무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세상사람들에게도 매력을 뽐내고 그러면서 교회도 다니는(?) 양다리 걸치는 것이 마치 고상한 신앙인것처럼 여기는 이들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바로 회개이며, 회개와 더불어 성도가 누리는 하늘의 기쁨을 결코 누릴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성도는
숨이 다하는 그날까지 가지고 가야할 것이 있다면 바로 회개입니다. 믿음과 회개는 성도로써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 지속되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앞에 우리자신이 설때마다 우리의 죄성을 보게하시고 그런 죄인에게
변함없는 사랑을 보여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해주시며 그때 우리는 두손들고 주님앞에 회개하여 주님만을 의지하겠다는 믿음의 고백과 함께 형언할 수
없는 천상의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성령께서 그런 은혜를 우리 모두에게 허락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고후11:2)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고,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도 우십시요. 저도 하나님의 열정으로 나아가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시고 기뻐하시며, 덩실덩실 춤을 추시는 선하신 아버지를 우리 모두가 그려보시길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