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없는 인간을 십자가 없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통하여 심판없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진노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원했던 금송아지다’ –리처드 니버
인간의 전적타락과 하나님의 전적은혜라는 무한간극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신비하게 연결되어 인간이 최악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최상의 은총을 입는 은혜의 수혜자가 성도들임을 믿습니다.
이 은혜를 욕심으로 가득차고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한것뿐이며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재주를 내보이며, 열심과 잘하는 것을 금송아지 마냥 자랑했던 자에게 그저 주시고 이제는 십자가로 자랑할 것을 요구하십니다.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롬6:10~11)
죄에 대해 단번에 죽으심으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그 영광안에 저희들을 두셨으니 이 천상의 기쁨을 인간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 신앙은 부활신앙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다 헛것입니다. 부활신앙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결정합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라는 예수님의 선언은 주님께서 이땅에 오신 목적을 대변하는 말씀입니다. 주님이 전한 복음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
이 복음은 이 세상 나라가 다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던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눈을 뜨고 그 나라를 바라보게 만들고, 하나님 나라에 목숨을 걸고 살게 합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가정적, 경제적 위기, 자녀들의 실패,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그리고 얘기치 못한 사건과 사고, 건강의 상실, 전염병의 창궐 등 이런저런 피할 수 없는 문제들 속에서도 부활신앙은 외치게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선하십니다”라고 말입니다.
이런 고백이 가능한 이유는 하나님과의 교제 단절로 경험하게 되는 인생의 그 어떤 황무함, 절망, 낙심, 그것이 죽음이라 할찌라도 부활신앙을 이길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샘물가족 여러분! 주안에서 부활을 경험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살아갑시다. 성도는 잠깐 있다가 사라질 세상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며 살 수 없는 존귀한 자임을 기억하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우리의 삶속에서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고민하고 갈등하는 몸부림이 있길 소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의미를 이루가는 삷입니다.